정말 본의 아니게 시리즈가 되어 버리는 포스팅들이 몇 개가 있다. 아주 의도적으로 시리즈로 시작하면 은근 빠른 시간 내에 소재가 떨어지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시리즈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시리즈가 된 "독일의 특이한 술" 벌써 그 네 번째 이야기다.
대부분 독일의 특이하고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은 독일 지인들을 통해서다. 그 중에서도 우리 시골 마을 근처 더 시골 마을에 사는 고양이 두 마리 키우는 이 시골집에 오면 정말 다양한 독일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얼마 전 할배와 블랙베리를 수확했을 때의 일화다. 그날 우리는 아침부터 블랙베리 두 양동이를 땄는데 아마 무게로 치면 대략 4킬로 정도를 딴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한 통은 몽땅 잼을 만들고, 남은 한 통 중 반은 설탕에 재웠는데, 이 설탕에 재운 블랙베리 반은 저녁 디저트용으로 아이스크림과 생크림에 곁들여 먹었고, 또 반은 쿠헨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남은 반은 갑자기 할배와 할매가 지하실로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지하실 한 귀퉁이에 놓여져 있던 두 개의 큰 항아리를 꺼냈는데 겉에는 룸토프(Rumtopf)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두 분이 뚜껑을 열었는데 그 속에는 엄청난 양의 온갖 베리 종류들과 견과류 그리고 럼주가 들어 있었다. 곧 할배는 80도나 되는 럼과 한 봉투의 설탕을 가지고 오셨는데, 이 모든 것을 섞어서 만들어내는 술, 이것이 바로 Rumtopf인 것이다.
Rumtopf 를 굳이 직역하자면 럼 항아리 라는 의미인데, 럼은 아주 센 술의 일종으로 보통은 오스트리아의 럼주인 Stroh 럼을 주로 이 술을 담그는데 사용한다. 나는 지금 이 것을 술의 한 종류로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후식으로 먹는데 콤포트의 일종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독일 및 덴마크 지역의 후식인 럼토프는 일반적으로 봄에 베리들이 익기 시작할 때 즈음 항아리를 꺼내어 준비하기 시작한다. 딸기, 체리 그리고 블랙베리 등 이렇게 작고 조그마한 과일들이 하나씩 익어 갈 때 마다 수확해서 엄청난 도수의 럼에 설탕과 함께 절여두고 마지막에는 견과류를 함께 넣어 차갑고 어두운 곳에 밀봉하여 겨울까지 익도록 두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가을 및 겨울 주로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즐겨 먹게 된다고 한다. 꽤나 전통적인 음식 또는 술이어서 현대적인 느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독일 전통 방식의 후식 겸 술이라는 의미가 럼토프를 더 돋보이게 한다.
이미 봄부터 계속 만들어지고 있던 럼토프에 블랙베리와 설탕 그리고 럼을 추가하셨다. 그 이후 아래 사진처럼 나무 국자로 아래까지 깊숙이 담가 잘 섞어 주신다.
들어가 있는 과일도 종류가 다양하다. 봄부터 시작해서 딸기(Erdbeere), 블루베리(Heidelbeere), 라즈베리(Himbeere), 체리(Kirsch), 구스베리(Stachelbeere) 그리고 최근의 블랙베리(Brombeere)까지. 대부분 할배의 정원에서 수확한 것이고 블루베리는 알맹이가 큰 것을 보니 따로 구매하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에 헤이즐넛(Haselnuss)와 아몬드(Mandeln) 그리고 호두(Walnuss)를 넣어 잘 섞어준다. 식구는 4명뿐이지만, 워낙 집으로 손님들을 자주 초대하는 문화를 가진 독일인들 이기에 한번 담글 때 통 크게 두통씩 담는다. 할매는 이렇게 내가 신기해 할 때마다 이것 저것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는데 블로그에 잘 적으라며 사진도 찍을 수 있게 잠깐 잠깐 멈춰주신다.
끝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살짝 맛을 봤는데, 정말 맛있는데 엄청 센 술이다. 기침 나오고 켁켁 거리고 속이 타들어가는 와중에 맛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최초의 경험이었다. 분명 겨울에 과일이 더 물러지고 럼에 제대로 절여지면 약 55도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이 즈음 되면 그래도 덜 켁켁거리고 맛볼 수 있으려나? 고양이 밥 주러 지하실 내려갈 때 마다 궁금한 Rumtopf 였다.
by 슬아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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