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한 중앙정부부처에서 파견근무를 할 때였다.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 반대편이 분주해 살펴보니 정장을 차려 입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앳된 외모에 하위직 신입 공무원이려니 생각했으나, 50대는 되어 보이는 인솔 담당자가 그들은 사무관님이라 부르며 꽤나 정중하게 안내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신규 임용된 신입 사무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누가 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들의 어린 외모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의문이 들었다. 사회경험이 전무한 20대 청년들이 고시를 합격했다는 이유로 5급 고위직 공무원으로 출발해 얼마 후 중요 정책을 개발하고, 혹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과정인가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이제 지양해야 할 때가 됐다. 교육수준이 낮은 시대에 소수 엘리트를 선발해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스템이 현재 우리나라 20대의 약 80%가 대학을 진학하는 사회에서 과연 필요한 제도인가에 끊임없이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9급으로 시작했든, 7급으로 시작했든 10년 넘게 실무를 담당한 사람과 고시로 이제 갓 임용된 사람 중 누가 팀을 이끌고,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할까?
고시는 그 분야의 지식의 정도를 측정하는 시험이지, 실무 능력 전반을 평가하는 시험이 절대 아니다. 머리 좋다고, 공부 잘한다고 모든 능력이 탁월할 것이라는 낡은 사고방식을 우리 사회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저소득층 혹은 집안 배경이 좋지 않은 계층의 신분상승의 기회로 고시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다. 학벌, 지연, 혈연에 의해 사회 내에서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 넘는 동안 시행된 고시제도가 과연 이러한 차별을 넘어서는 공정한 경쟁의 통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해당 분야에 필요한 일정 수준의 지식역량을 평가해 하위직 공무원을 다수 선발하고, 업무평가를 통해 고위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평가/승진 제도가 병행되어야 함은 필수적이다.
얼마 전 한 버스 운전기사가 단지 요금 몇 천 원을 횡령했다고, 이를 정당한 해고 사유로 판단한 판결을 본 적이 있었다. 한국 사회가 그렇게 신봉하는 고시로 길러낸 엘리트 법조인이, 얼마나 사회 실정에 우둔하고, 법리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떤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에 충분한 직무경험과 조직을 이끌 대인관계 능력 등 다양한 분야의 역량을 요구한다. 과연 우리 사회의 고시제도가, 그러한 인재를 평가하고 선발하는 제도일까. 사회경험이 전무한 사회 초년생이 고시만을 합격 후 그 분야의 리더가 되는 자질을 일순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일반 기업에서 입사성적이 높다고 과장/차장으로 임용하는 것이 그리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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